Tuesday, December 13, 2016

VBox, DOS Version 3.3

Apple II와 IBM PC 및 그 호환기종의 운영체제 가운데 별 의미없는 공통점은 두 시스템 모두 DOS 3.3이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Apple II는 이후 새로운 확장된 ProDOS나 GS/OS가 발표되었지만 상대적으로 DOS 3.3 만큼 널리 사랑받지는 못했다.

 PC 세상에서 MS-DOS 3.X의 등장은 본격적인 대용량 저장 장치의 시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었다. IBM PC/XT와 함께 MS-DOS 2.0이 하드 드라이브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게 되면서 전세계적인 PC 제조사에 OEM으로 공급되어 MS-DOS의 세상이 시작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DOS 3.3은 IBM PC/AT의 등장과 함께 1.44 MB 3.5-인치 플로피 드라이브와 32 MB으로 제한되었던 하드 드라이브의 파티션에 대한 확장을 지원한다. 거의 모든 PC 제조사의 제품에 OEM으로 탑재된 MS-DOS 3.3은 PC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DOS 3.3으로 더 이상 PC는 IBM PC 호환기종이 아닌 MS-DOS 머신으로 불려질 수 있게 된다. 이후 DOS 4.0의 실패로 본의 아니게 1991년 DOS 5.0이 등장할 때까지 DOS 3.3의 시대가 이어졌다.

 MS-DOS를 OEM으로 탑재하게 된 주요 기업들은 MS-DOS를 각자 스타일에 맞도록 사용자 환경을 수정하여 사용하므로써 나름의 차별성을 시도하기도 했다. 예로 HP는 MS-DOS 환경을 HP-UX 환경의 터미널과 같은 화면 구성 그리고 파일 관리자를 최고급 Vectra PC에 탑재했다. 또한 Compaq은 이 당시부터 독자적인 설치 프로그램및 시스템 관리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DOS 환경은 대부분의 PC 사용자에게 어려운 학습 대상이었다. 때문에 국내외 주요 기업의 컴퓨터에는 DOS 환경에 대한 자세하고 친절한 도움말 기능이 필수적으로 내장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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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S 3.3 이후 등장한 DOS 4.0의 실패 그리고 DR-DOS나 OS/2를 비롯한 경쟁 제품의 등장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운 DOS 5.X을 OEM은 물론 소매 판매도 개시한다. 이후 DOS 5.X 그리고 DOS 6.X에 이르러서는 기본 유틸리티를 탑재한 완전한 운영체제로 변모하면서 Windows 3.X와 함께 경쟁 제품을 PC 시장에서 몰아내게 된다.

VBox, MS-DOS의 부활

컴퓨터를 접한 이후 개인적으로 Apple II에 이어 Macintosh 사용자로서 그리고 업무적으로는-최근에야 Windows 환경에서 주 업무가 이뤄지고 있지만-UNIX 환경을 선호했던 상황에서 MS-DOS 그리고 Windows는 딱히 흥미롭거나 관심이 가는 운영체제가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DOS나 Windows는 언제나 내 주변에 존재하는 주요한 컴퓨팅 환경이라는 점도 사실이다.

21 세기를 전후로 태어난 많은 이들에게 DOS는 알지 못하는 과거 혹은 역사의 산물일 뿐이었다. MS-DOS, 보다 엄밀하게 보자면 DOS의 시대는 IBM PC 등장과 함께 약 10 년간 PC 세상을 주도하다가 Windows 3.1 이후 Windows 95 그리고 Windows 98에 이어 사라질 때까지 약 20 년간의 영욕을 세월을 끝으로 사라지게 된다. 물론 DOS의 자취는 현재까지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든 운영체제에서 감춰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좋은 그르든 MS-DOS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어제와 오늘을 지탱한 기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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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MS-DOS의 활용성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우선 이미 세상이 Windows XP에 이어 Windows 10까지 발매되면서 이전 DOS 시대와는 완전히 단절되었지만 아직도 DOS 기반의 훌륭한 프로그램들이 적지 않다는 점과 그리고 DOS 기반으로 구동되는 Windwos 3.1이나 Windows 95/98에서도 비슷한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래픽스 카드나 프린터 그리고 네트워크 카드 등과 같은 주변기기의 지원이 크나 큰 제약이긴 하지만 개인 입장에서는 평범한 PC 사양으로 나름 고성능과 최적 생산성을 얻을 수 있다는 약간은 억지스러운 장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시스템에 직접 DOS나 Windows 3.1의 설치는 무리가 있더라도 Virtual Box 등과 같은 가상화 시스템을 통하여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추가로 생각할 수 있는 DOS의 활용성은 게임 플랫폼이다. 비록 현대의 Windows 기반 게임이나 인터넷을 통한 게임도 엄청나지만 책상 위 작은 컴퓨터 위의 컬러 화면에서 구현되는 게임에서 느껴지는 감흥도 결코 만만치 않다. DOS 시절의 멋진 게임들의 상당수가 Windows로 전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름의 경쟁력이 남아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DOS와 같은 텍스트 기반의 제한된 기능의 운영체제의 부족한 면을 만회하기 위해 여러 유틸리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사실 DOS는 수 많은 유틸리티와의 조합으로 하나의-정상적인-운영체제로 완성될 수 있다. 유사한 텍스트 기반의 터미널을 사용하는 UNIX나 Linux 환경과 비교할 때 싱글 유저, 싱글 태스킹 환경은 기능의 다양성이나 성능에서 비교할 수 없다.

가상화 환경이든 직접 설치든 현재 가장 쉽게 입수가 가능한 버전은 MS-DOS 6.2로서 기능적으로도 안정되고 대용량 저장 장치 지원 등 현재 일반적인 PC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다. 만일 MS-DOS와 관련된 저작권 등의 문제가 우려된다면 FreeDOS를 사용할 수도 있다. FreeDOS는 Windows 3.X 이후의 Windows 운영에 다소 차이와 제한이 있지만 DOS 환경에서 보자면 MS-DOS에서 기대할 수 있는 기능은 물론 최신 하드웨어에서 적용된 사항들도 운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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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DOS와 Windows 3.1(혹은 이후부터 현재까지) 환경에서의 어플리케이션을 비교해 보면 동일하거나 유사한 기능을 비교해볼 때 절대적으로 사용이 어렵거나 기능이 미약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래픽스 기반 운영 환경으로 전환되면서 멀티 태스킹 환경에서의 여러 어플리케이션을 동시에 운용하는 것이 DOS와 같이 싱글 태스킹 환경의 단일 프로그램 운용보다 생산적이라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굳이 DOS 환경에서의 작업의 효용성을 내세우자면 싱글 태스킹에 의한 집중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네트워크 연결을 통한 공유 작업이나 웹 브라우저를 사용할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순전하게 업무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나름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Sunday, December 11, 2016

VBoX, 한글 MS-DOS 설치

한국에서 Apple II로 대표되는 8-비트 PC와 IBM PC를 지칭하게되는 16-비트 PC를 기술적으로든 사용 환경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하나는 한글의 사용 유무라고 할 수 있다. 8-비트 PC에서 한글 사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해상도나 처리 속도 측면에서 무리였다. 물론 16-비트 IBM PC 그리고 MS-DOS 환경에서도 처음부터 한글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기술적 한계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수 많은 선구자들의 노력으로 개선되어 왔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한글 MS-DOS를 출시하게 된다. 하지만 MS-DOS 환경에서 정확하게-완벽하게-한글 입출력이 가능하게 된 시점은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한글 MS-DOS 2.X 버전이 출시되었다는 내용을 보았지만 실제 사용했던 경험은 없다. 그나마 본격적인 한글 MS-DOS의 사용은 3.X 버전에서부터 아닌가 싶은데 별도의 한글 입출력 기능을 가진 PC에서만 운용이 가능했던 걸로 안다. 하지만 한글 문제는 화면 출력뿐만 아니라 프린터 출력에서도 쉽지 않은 해결책이 필요했던 사안으로 기억된다.

 1990년을 전후로 삼보나 삼성 그리고 LG 등의 속칭 대기업은 물론이고 큐닉스 등의 중소기업의 PC에서도 자체적인 한글 입출력을 지원하는 BIOS를 탑재하고 한글 MS-DOS를 공급했다. 그리고 회사별로 별도의 워드프로세서 그리고 한글 입력 기능에 맞춰 수정된 Lotus 1-2-3나 dBASE III의 한글 버전으로 함께 공급했다. 1990년 경에 내가 학교에서(다른 곳에 비하면 무척 늦게 도입되었다) 사용한 PC는 Qnix 제품이었는데 한글 폰트가 상당히 미려했고, 으뜸글이라는 자체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 수 있었다. 실제 Qnix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한글 MS-DOS 개발의 주역이었다고도 한다. 이러한 특정 PC의 한글 입출력에 제한된 프로그램은 다른 PC에서도 한글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었다. MS-DOS 환경에서의 한글 폰트의 크기나 모양새는 상당히 어색한 느낌인 경우가 많았으며 넓지 않은 해상도에 차지하는 공간도 상당했다.

 PC 시장의 또 다른 중심이었던-화이트박스로 알려진-조립 PC의 경우 한글 폰트 및 입출력 기능을 갖춘 인터페이스 카드를 설치하거나 소프트웨어로 구현된 한글 환경하기도 했다. 곧 BIOS 역시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진화되면서 영문 MS-DOS 환경에서도 한글 입출력이 지원될 수 있었다. 당시 기억으로 한메한글, 태백한글 그리고 한글도깨비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크게 효용성을 가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한글 입출력 기능을 지원 프로그램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아래아 한글이나 이야기와 같은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한글 입출력을 위한 BIOS 프로그램들의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MS-DOS에서의 한글 입출력 기능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되었던 것은 한글 구성체계의 조합형과 완성형 간의 대립이었다. 사실 이 문제는 정보화 시대의 한글 표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였지만 정보화를 정부화로 인식하는 수준의 대한민국 정부가 결국 완성형을 표준으로 선정하게 됨에 따라 일단락될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사용자 입장에서는 의미없는 논쟁처럼 비춰졌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지 못한 점에 아쉬움이 있다. 21 세기 아직도 MS-DOS에 이은 MS-Windows 운영체제로 한정한 현실에서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남아있다고 본다.

 MS-DOS의 한글 문제는 5.0 이후 크게 개선되었는데(4.0 버전은 워낙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언급을 따로 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완성형 기반의 웬만한 한글 프로그램은 무리없이 작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초기 MS-DOS 환경에서 가장 많이 한글 워드프로세서인 보석글도 특별한 조치없이 실행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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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PC에서의 한글 입출력은 다가 온 한글 Windows 3.X 출시 이후에는 이전과 같은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한글 Windows 3.X이나 Windows 95가 출시되기 전에는 이런저런 방안들이 동원되었지만 해결은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이었다. PC의 하드웨어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제약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고, 덕분에 그 사이 한글 입출력 기능이나 폰트 개발 등에 수고한 수 많은 이 땅의 선구자의 노력이 지금에서는 상당히 가려졌다고 볼 수 있다.

 Virtual Box를 사용함에 있어 한글 MS-DOS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지만, 간혹 예전에 작성했던 초기 국내 워드프로세서 파일을 직접 열기 위한 용도 정도일 수 있다. 그나마 그런 파일이 저장된 플로피 디스크를 읽을 수 있는 플로피 드라이브가 장착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Friday, December 9, 2016

추억과 기억.. MicroPro WordStar 워드프로세서

MicroPro의 WordStar를 처음 접했을 때 소프트웨어의 이름이라기 보다는 영화 Star Wars의 느낌이 먼저 다가왔다. 전혀 상관없는 분야이지만 그런 느낌에서 분명 어떤 식으로든 의도한 바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접했던 WordStar가 Apple II의 CP/M에서 였는지 MS-DOS에서 였는지 기억이 없다. 하지만 실제 사용했던 경험은 1980년대 후반 MS-DOS에서 였던 것은 분명하다.

WordStar,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당시에는 모두 그런 식이었다. 곧 다가올 시대 였지만 아직까지는 GUI 기반 운영체제나 마우스 인터페이스는 꽤나 비싼 비용이 요구되던 시기였다. 맥킨토시는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스프레드시트 1-2-3, 로터스의 영광은 영원할 것 같았다.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브랜드 PC마다 따로 개발되어 탑재되었고, 삼보 컴퓨터의 보석글이 표준처럼 회자되고 있던 상황에서 한/글 1.0의 등장이 관련 잡지 등에서 작게나마 소개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은 금새 다가왔고, WordStar의 추억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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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WordStar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Nondocument 포맷을 별도로 지정해야 했던 사실 때문 아닌가 싶다. Nondocument는 일반적인 문서가 아닌 프로그램이나 텍스트 데이터 등을 만들 때 사용하는 용도였는데, 굳이 시작 단계에서 이렇게 구분한 것이 그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저장할 때 텍스트 포맷으로 지정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구분했나 싶었다.

WordStar에 관한 또 다른 기억은 WordStar 2000이다. 일반적으로 WordStar 2000이라면 당연히 2000년 즈음하여 출시해야 할 제품이어야 하지만, WordStar 2000은 무려 1985년에 출시되었다. 사실상 WordStar와는 상관없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WordStar 2000 이전 버전은 3.0이었고, 이후 버전은 4.0이었다.

이후 WordPerfect의 부상으로 WordStar는 시장 지배력과 관심을 잃게 되고 이전의 영광은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Windows 시대가 도래한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Windows 버전으로 제품이 출시되었다.

1978년 WordStar의 CP/M 버전을 출시되면서 마이크로컴퓨터에서 사용할만한 최초의 워드프로세서로 등장했다고 할 수 있으며, 1979년 Apple II에서 CP/M 운용이 가능하게 되고 또한 TRS-80 버전의 출시로 1980년대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WordStar의 영향력은 곤고해졌다.

IBM PC와 MS-DOS의 시장 점유율이 대세로 자리 잡기 전까지 CP/M 영향력이 유지되는 동안 WordStar는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의 지위는 절대적이었다. 특히 MS-DOS 환경으로 이전된 이후에도 기존 CP/M 사용 환경에 익숙한 사용자들에 의해 WordStar의 우위를 여전히 지속되었다.

시장 우위에 선 MicroPro는 비즈니스 시장의 확대를 위해 데이터베이스와 스프레드시트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하고, 여러 주변 써드-파트 어플리케이션의 지원도 증가하면서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패키지와 같이 업무용 어플리케이션 생태계로 PC의 비즈니스 시장을 장악하고자 했다.

하지만 애초 CP/M 기반에서의 운용을 위해 개발된 WordStar의 기능적 구조는 16-비트 IBM PC의 MS-DOS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아 점차 확대되는 비즈니스 시장의 요구에 대응이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장 요구에 매번 프로그램을 새로 작성하는 수준의 많은 노력과 비용이 요구되었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WordStar 2000이라는 MS-DOS 환경에 최적화된 기능으로 대응하기 위한 승부수 였지만, 느린 속도와 불안정한 성능 무엇보다도 이전 WordStar와 호환성 문제로 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그리고 WordPerfect라는 새로운 경쟁자에 의해 위협받게 된다.

1987년 WordStar 2000의 단종되고 이전 WordStar 시리즈에 기반한 WordStar 4을 출시된다. 다행히 WordStar 4가 MS-DOS와 CP/M 환경에서 다시 인기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이전 WordStar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Wednesday, December 7, 2016

VBox, Norton Utilities vs. PC-Tools #1

1981년 IBM PC가 등장한 이후 1980년대는 Apple II와 Commodore 64 중심의 8-비트 PC와 IBM PC 그리고 Macintosh 중심의 16-비트 PC가 경쟁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 사실 사용자 측면에서는 8-비트와 16-비트 기기의 사용 환경에 따른 차이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를 거치면서 완전히 16/32-비트 PC의 시대로 전환되게 된다.

 1990년대 접어 들면서 PC 사용자들에게 여러 필수 유틸리티가 등장하게 되는데 가장 선두에 서게 되는 것이 플로디 디스켓이나 하드 디스크의 문제를 해결하고 파편화를 정리하는 기능과 함께 디렉토리 관리도구인 NCD로 무장한 Norton Utilities와 디스크 복사를 비롯한 시스템 관리 기능을 제공하는 PC-Tools 였다. 1980년대 말까지 하드 디스크를 장착하지 않은 PC는 꽤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일반 PC 사용자에게 있어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중요한 일이 플로피 디스크를 복사하는 일과 오류난 플로피 디스크를 수리하는 일이었다. 덕분에 PC-Tools와 NU(Norton Utilities)는 PC 사용자의 필수 유틸리티 임에 분명했다.

 PC-Tools의 개발사인 Central Point는 이미 Apple II 사용자에게 Copy II Plus로서 범접할 수 있는 독보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로서 명성을 쌓아 왔다. 그리고 PC 용으로 발매된 Copy II PC는 Copy II Plus와 같인 복사 방지된 플로피 디스크를 복사하는 기능으로 사용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후 MS-DOS 환경에서의 복제 방지된 플로피 디스크의 사용이 줄고 또한 하드 디스크의 사용이 늘어 남에 따라 1985년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는 통합 디스크 유틸리티인 PC-Tools가 출시된다. PC-Tools는 Apple II의 Copy II Plus와 유사한 인터페이스로 많은 사용자에게 친숙하게 받아 들여지면서 큰 호응을 얻으며 즉시 디스크 유틸리티의 선두에 올라서게 된다. 1987년 PC-Tools Deluxe 4.0에서는 파일 관리 기능과 디스크 복사 기능을 분리하고 새로운 화면 인터페이스로 변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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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BM PC와 MS-DOS 등장과 함께 1982년 Peter Norton에 의한 개발된 NU는 오류난 파일과 삭제된 파일을 복구하는 유틸리로 시작되었다. 이후 NU는 PC-Tools와 달리 각 기능이 개별 파일로서 제공되었다. 그 가운데 디스크의 파일 및 디스크 복구에 탁월한 성능을 보인 NDD(Norton Disk Doctor)가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1987년 NU 4.0에서는 PC 유틸리티의 대명사로 남게 되는  NCD(Norton Change Directory)가 포함된다. 플로피 디스크의 용량 증가와 하드 디스크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디렉토리 관리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하기 시작한 때에 계층 구조를 직접 보면서 따른 관리가 가능한 NCD는 PC 사용자에게 16-비트 시대의 의미하는 프로그램으로 각인 되었다. PC 유틸리티 시장의 선두로 나서게 된 NU는 1990년 Symantec에 인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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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에 접어 들면서 PC 환경에는 여러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가장 큰 변화는 하드 디스크의 사용이 PC 사용자에게 일반화되어 가고 있는 점과 함께-비록 MS-DOS 기반이기는 하지만-완전히 새로운 그래픽스 사용자 환경을 제공하는 Windows 3.1의 등장이었다. 우선 하드 디스크 사용 환경의 확산은 디스크 유틸리티가 기존의 복사나 파일 복구 수준에서 벗어나 시스템 관리 기능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빠르고 가벼운 유틸리티의 모음인 NU가 사용자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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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PC-Tools의 통합 구성은 점점 무거워져 가고 있었다. 특히 느리고 파편화가 잦은 MS-DOS의 특성으로 하드 디스크의 운용 성능이 저하됨에 따라 이를 개선하는 NSD(Norton Speed Disk)는 하드 디스크 사용자의 필수 유틸리티가 된다. 이에 비해 PC-Tools는 NCD와 같은 일상의 기능을 통합 체계인 PC-Shell에 포함하여 제공하므로 써 상대적으로 느리고 무거운 사용감을 제공했다. 하드 디스크의 사용 확대와 함께 PC-Tools의 이러한 변화는 현대적 시각에서는 옳은 판단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 MS-DOS와 하드 디스크는 그러한 시도를 충분히 받쳐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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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Windows 3.0 출시 이후 1992년 이어 발매된 Windows 3.1의 대성공은 디스크 유틸리티 분야에서의 변화를 초래했다. Windows 기반의 디스크 유틸리티가 발매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MS-DOS 기반이었기 때문에 NU와 PC-Tools에서도 Windows를 지원하지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 유틸리티 모음으로서의 NU와 MS-DOS 관리 환경을 대체한 PC-Tools 간의 선호도 경쟁에서 NU가 앞서게 된다. Windows 환경에서 PC-Tools의 관리 기능을 일부러 사용할 필요성은 찾기는 힘들었다.

 하드 디스크와 Windows 3.1에 이른 또 다른 변화는 바로 컴퓨터 바이러스의 확산이었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플로피 디스크는 물론 하드 디스크까지 거침없이 감염시켰으며 이에 전 세계적으로 많은 백신 회사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가운데 MS-DOS 디스크 유틸리티의 선두인 Symantec과 Central Point 역시 안티바이러스 분야에서 경쟁하게 된다. Symantec은 기존 Macintosh 용 안티바이러스에서 사용한 Symantec AntiVirus라는 이름을 버리고 PC 환경에서는 새로 인수한 Norton의 이름으로 사용하여 NU와 별개의 Norton AntiVirus를 출시한다. 반면 Central Point는 별도 프로그램 출시를 늦추고 PC-Tools 7.0에 안티바이러스 기능을 탑재한다. 이로서 PC-Tools는 PC 사용자 입장에서 거의 완전한 유틸리티 키트로 변화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은 급속한 바이러스 확산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결국 Norton AntiVirus가 NU에 이어 보안 프로그램 시장에서도 선두가 나설 수 있게 된다. 반전을 꾀한 Central Point는 MS-DOS 6.0에서 자사의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탑재하는 성과를 보이지만 기대와 달리 PC-Tools의 재기에는 도움이 되질 못했다.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는 안티바이러스가 제공되는 MS-DOS 환경에서 굳이 별도로 PC-Tools를 구입할 이유 중 하나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MS-DOS 환경에서의 NU와 PC-Tools 두 유명 유틸리티 패키지 간의 경쟁은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 Norton과 Symantec이 승리를 가져갔다고 볼 수 있다. 수 년에 걸쳐 Norton는 디스크 복구와 빠른 디렉토리 관리 도구로서 인식되어 갔지만 PC-Tools은 초기 성공적인 플로피 디스크 복사 도구로서의 이미지를 벗어 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프로그램이 개선되는 가운데 NU의 경우 기능과 인터페이스가 일관성을 나름 유지한 것에 비해 PC-Tools는 너무 잦은 변화은 물론 계산기나 달력 기능 등이 추가되면서 표준 PC 사양에서 점점 무겁게 확장되었던 점도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두 프로그램이 주는 이미지가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PC-Tools는 초기 IBM PC의 PC-DOS 환경의 딱딱하고 칙칙한 원색의 이미지로 구성되었지만 NU은 4.0을 지나면서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바뀌게 된다. PC에서의 VGA 그래픽스 카드의 도입이 확산되면서 사용자 입장에서는 NU의 사용감이 훨씬 더 만족할만 했다. 결국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PC-Tools 7부터는 부드러운 색상으로 바뀌었고 PC-Tools 8 이후로는 Norton Utilities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한 파스텔 톤의 색상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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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DOS 환경에서 경쟁은 비록 Symantec의 승리로 이어지고 있었지만 1990년대 중반에 접어 들면서 Windows 3.1 이후 새로운 Windows 환경에서의 전용 유틸리티 경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Monday, December 5, 2016

VBox, HP Dashboard for Windows

과거, 불과 10 년 길게 보자면 20 여년 전, UNIX 운영체제 기반의 엔지니어링 워크스테이션(EWS)이 하이-엔드 데스크탑 시스템의 주역이던 시절 이 시장은 HP와 SUN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볼 수 있다. HP는 IBM과 함께 미드-레인지 이상의 고급 시장을 선도했고 SUN은 엔트리 및 미드-레인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Digital이나 SGI는 나름 특화된 시장에서 선전하고 수준이었다. 이들 EWS는 각자의 운영체제와 독자적인 그래픽스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물론 UNIX와 X-Window System이라는 기본 체계는 공유하고 있었지만 최종 사용자 입장에서는 각 사마다 다른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 가운데 GUI 기반의 그래픽스 환경은 HP의 HP-UX와 SGI이 IRIX이 가장 세련되어 있었다. 특히 시장 점유율에서 선두였던 HP-UX의 그래픽스 환경인 VUE는 이후 EWS의 공유 환경인 CDE의 근간이 된다.

HP의 VUE는 PC의 Windows 3.1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운영환경 측면에서 한세대 앞선 기능을 제공하고 있었다. 실제 Windows 3.1 사용자로서 함께 사용하는 HP-UX 9.07의 화면은 완벽한 그래픽스 사용자 환경처럼 느껴졌다. 당시 HP는 HP-UX 기반의 워크스테이션 뿐만 아니라 서버 그리고 Vectra라는 이름으로 PC 영역까지 나름 독자적인 운영 환경을 제공했다. 프린터나 플로터 등의 출력 기기는 굳이 말할 바 없을 것이다. 그리고 1992년 즈음 HP는 HP-UX의 VUE 환경을 Windows 3.1의 프로그램 매니저로 포팅한 HP Dashboard를 발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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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Dashboard는 HP-UX의 멀티 윈도우 기능을 구현했으며 Windows 3.X의 불편한 프로그램 관리 기능을 항상 화면 아래에 두고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파일에 대한 드래그앤드롭을 지원하므로 써 현대적인 운영체제와 같은 사용 환경을 제공했다. 특히 현재 시스템의 메모리 등의 자원 현황이나 시간 및 일정에 관리 알람 기능등은 당시 Windows 3.1 사용자에겐 무척이나 편리한 기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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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Dashboard는 Norton의 Norton Desktop for Windows나 Central Points의 PC-Tools for Windows 같은 프로그램 및 데스크 탑 관리자에 비해 플로피 디스크 한 장의 작고 가벼우면서 그리고 꼭 필요한 기능을 갖춘 최적의 프로그램이었다. HP는 Dashboard를 Vectra 시리즈에 기본 탑재 시킨 후 별도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HP Dashboard의 영광도 Windows 95가 등장하면서 태스크-바 형식의 전혀 다른 데스크탑 환경이 제공됨에 따라 다른 프로그램 관리자처럼 변화를 겪게 된다. HP는 Windows 95를 위한 Dashboard를 출시했지만 시스템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모습과 기능으로 실망감을 주었다. 이후 Borland나 Starfish에 매각되고 Windows 95 버전 이후로는 사라지게 된다.